3조원 육박하는데 규정 없어 '골칫덩이'…이재현 교수 "미국 선례 벤치마킹" 제언
반품 비율 비슷한 美, 엄격한 규정 확립…아웃소싱으로 반품 전문 서비스 활발
"미국도 초창기 비영리 단체로 출발…한국 약업 3단체 협업해 물꼬 터야"
[데일리팜=정새임 기자] 3조원에 육박하는 불용재고약 반품이 제약업계의 해결해야 할 숙제로 떠오른 가운데 의약품 반품 전문 업체로 체계화에 성공한 미국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팀이 최근 진행한 불용재고약 연구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우리나라 의약품 유통시장에 출고된 전문의약품 중 반품된 제품은 12조6964억원에 달했다. 이는 출고된 전문의약품의 약 4.3%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품 문제는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부터 두드러졌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의사의 상품명 처방이나 빈번한 처방 변경, 제약사의 반품 비협조 등이 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불용약을 방지하기 위해 약사법은 처방의약품 목록 작성이나 대체조제 등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지만, 전자는 처벌 규정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후자도 대체조제 활성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의약품 소포장 의무 공급 제도도 적용 대상이 생산량에 10%에 불과하다.
불용재고약이 많아질수록 약국뿐 아니라 도매업체가 지는 부담이 커진다. 도매업체의 물류센터엔 반품약을 보관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는데 센터마다 적지 않은 물량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국의 요청에 반품을 받지만 제약사는 이를 회수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인다. 연구팀은 "잔여 유효기간별로 상이한 정산율, 매월 제한된 반품액 및 지연되는 반품 승인 등 까다로운 반품 처리로 제약사의 반품 기피 현상은 노골적인 수준"이라며 "도매상이 약국의 반품을 받기 어렵게 하는 결과로 이어져 불용재고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의약품유통협회가 전국 50여곳 의약품유통업체를 대상으로 72개 제약사 불용재고 의약품 반품 인수 기준을 파악해본 결과, 유통기한이나 금액에 따라 가능 여부와 삭감 기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제약사는 유통기한 6개월이 지난 제품은 반품을 거부하는 반면, 다른 제약사는 6개월 미만 제품만 반품을 받는다. 일년에 한 번 반품을 받거나 아예 반품은 받지 않는다고 선언한 제약사도 있다. 일부 제약사는 '약국에서 제약사로 클레임을 제기해야' 반품을 해준다는 황당한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예산에 반품 비용이 전혀 책정되지 않은 제약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현재 한국의 불용재고약 처리는 '폭탄 돌리기'와 같다"라며 "제약사는 반품 정책을 자주 변경하고, 도매상과 약국은 이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불용재고의 반품을 어렵게 한다. 의약품 회수를 제외하고는 반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어 책임의 주체가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반품 정책이 체계화된 미국은 어떨까. 연구팀 조사 결과, 미국의 의약품 반품 현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미국 처방의약품 시장은 연간 4100억 달러(약 460조원)인데 이 중 반품되는 처방의약품은 매출액 대비 약 3.2~4.0% 정도다. 이중 불용재고로 간주되는 의약품을 '재판매불가약품'이라 지칭하는데, 그 규모는 연간 약 60억 달러에서 70억 달러(약 6조7000억~9조 원)로 매출액의 1.5~2.0%를 차지한다. 재판매불가약품을 반품하는 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1980년대 말부터 미국 제약사와 도·소매상은 불용약 반품에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약품 반품 전문 업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기준 67개 반품 전문 업체가 등록돼 있다. 반품 전문 업체는 불용약을 대신 반품하고 비용을 평가해 관련 데이터를 모은다. 제약사와 도·소매 업체는 비핵심 분야의 아웃소싱으로 시간과 유·무형적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반품업체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불량 의약품의 회수다. 의약품 회수 과정에서 반품 업체는 제약사의 회수 통지문을 배포하고 반품된 제품을 수령·처리하며 도·소매상과의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 관련 정보를 미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하는 업무도 이들의 역할이다.
연구팀은 반품 전문 업체에서 사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크레딧(Credit)'에 집중했다. 크레딧은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으로 각 제약사 반품 정책에 따라 크레딧 제공 기준을 정해 시행한다. 크레딧 금액은 최초 취득 원가, 현재 원가 또는 계약 원가 등을 기준으로 제약사가 직접 계산하거나 반품업체에 대신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연구팀은 "크레딧 메모(credit memo)라는 회계전표를 통해서 크레딧이 관리되며, 크레딧을 받은 도매상 및 소매상은 추후 거래 시에, 혹은 미지불액이 있을 경우에는 지불할 금액을 이것으로 상쇄할 수 있다"라며 "이렇게 반품업체들이 엄격한 규제 하에서 불용재고약과 회수 대상약을 안전하고 적절하게 처리한다. 이들은 주(state) 정부의 면허를 취득하고 마약품 반품 관리를 위해 마약단속국(DEA)에 등록이 되어있다"고 덧붙였다.
▲ 미국의 주요 반품 전문 서비스 기업
주요 반품 전문 업체로는 지알엑스(GRx), 파마 로지스틱스(Pharma Logistics), 파마슈티컬 리턴즈 서비스(Pharmaceutical Returns Service)를 꼽을 수 있다.
지알엑스는 1986년 '의약품 반품의 골칫거리를 해결한다'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미국 전역의 약국, 병원 등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GRx는 이 분야의 표준이 되는 기업으로 꼽힌다. FDA, DEA, 교통부(DOT), 환경청(EPA), 주 약국위원회의 라이선스를 준수하며 1000개 이상 제약사와 도매상, 구매대행사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있다.
지알엑스는 반품과 관련한 크레딧 평가를 위해 재고 목록을 대신 작성하며, 제약사의 정책에 맞춰 반품을 진행하고 크레딧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회수 서비스는 초기 알림부터 회수 종료까지 데이터 통합, 회수 및 유효성 확인, 최종 처리, 전체 진행 과정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 작성 및 제출 등 프로세스의 모든 측면을 관리한다.
파마 로지스틱스는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1위 반품 전문 업체로서 병·의원과 개인 및 체인 약국, 국방부 등에 반품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간 추적 수익은 약 515억원이다. 파마 로지스틱스는 의약품의 예상 반품 가치를 빠르게 파악해 14일 이내에 크레딧을 신속히 제공하는 '신속 크레딧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파마슈티컬 리턴즈 서비스는 미국 약사회가 공인한 최초의 반품업체 중 한곳이다. 이 기업은 동물병원을 위주로 약물 폐기·처분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이곳은 규모가 작아 반품하기 곤란한 제품들을 모아 제약사의 최소 반품 정책을 충족하고 크레딧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미국은 비효율적이던 의약품 반품 물류를 제3자인 반품 전문 업체를 통해 안정화하고, 우리나라와 달리 엄격하고 책임의 주체가 명확한 반품 규정을 만들어 체계가 확고히 정착할 수 있었다"라며 "미국 역시 제약사별 반품 정책은 상이하지만 반품업체가 서로 다른 반품 정책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크레딧 정산, 그리고 반품과 관련한 배송 물류 등 모든 업무를 부담하여 복잡성을 해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대한약사회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세 단체가 미국의 선례를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미국 반품 업체가 초창기 비영리법인으로 출발했던 사례를 약업 3단체가 벤치마킹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라며 "의약품 반품 문제는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기보다 제3자의 개입으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정새임 기자 (same@dailypharm.com)
3조원 육박하는데 규정 없어 '골칫덩이'…이재현 교수 "미국 선례 벤치마킹" 제언
반품 비율 비슷한 美, 엄격한 규정 확립…아웃소싱으로 반품 전문 서비스 활발
"미국도 초창기 비영리 단체로 출발…한국 약업 3단체 협업해 물꼬 터야"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팀이 최근 진행한 불용재고약 연구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우리나라 의약품 유통시장에 출고된 전문의약품 중 반품된 제품은 12조6964억원에 달했다. 이는 출고된 전문의약품의 약 4.3%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품 문제는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부터 두드러졌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의사의 상품명 처방이나 빈번한 처방 변경, 제약사의 반품 비협조 등이 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불용약을 방지하기 위해 약사법은 처방의약품 목록 작성이나 대체조제 등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지만, 전자는 처벌 규정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후자도 대체조제 활성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의약품 소포장 의무 공급 제도도 적용 대상이 생산량에 10%에 불과하다.
실제 의약품유통협회가 전국 50여곳 의약품유통업체를 대상으로 72개 제약사 불용재고 의약품 반품 인수 기준을 파악해본 결과, 유통기한이나 금액에 따라 가능 여부와 삭감 기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제약사는 유통기한 6개월이 지난 제품은 반품을 거부하는 반면, 다른 제약사는 6개월 미만 제품만 반품을 받는다. 일년에 한 번 반품을 받거나 아예 반품은 받지 않는다고 선언한 제약사도 있다. 일부 제약사는 '약국에서 제약사로 클레임을 제기해야' 반품을 해준다는 황당한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예산에 반품 비용이 전혀 책정되지 않은 제약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현재 한국의 불용재고약 처리는 '폭탄 돌리기'와 같다"라며 "제약사는 반품 정책을 자주 변경하고, 도매상과 약국은 이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불용재고의 반품을 어렵게 한다. 의약품 회수를 제외하고는 반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어 책임의 주체가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반품 정책이 체계화된 미국은 어떨까. 연구팀 조사 결과, 미국의 의약품 반품 현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미국 처방의약품 시장은 연간 4100억 달러(약 460조원)인데 이 중 반품되는 처방의약품은 매출액 대비 약 3.2~4.0% 정도다. 이중 불용재고로 간주되는 의약품을 '재판매불가약품'이라 지칭하는데, 그 규모는 연간 약 60억 달러에서 70억 달러(약 6조7000억~9조 원)로 매출액의 1.5~2.0%를 차지한다. 재판매불가약품을 반품하는 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1980년대 말부터 미국 제약사와 도·소매상은 불용약 반품에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약품 반품 전문 업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기준 67개 반품 전문 업체가 등록돼 있다. 반품 전문 업체는 불용약을 대신 반품하고 비용을 평가해 관련 데이터를 모은다. 제약사와 도·소매 업체는 비핵심 분야의 아웃소싱으로 시간과 유·무형적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반품업체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불량 의약품의 회수다. 의약품 회수 과정에서 반품 업체는 제약사의 회수 통지문을 배포하고 반품된 제품을 수령·처리하며 도·소매상과의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 관련 정보를 미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하는 업무도 이들의 역할이다.
연구팀은 반품 전문 업체에서 사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크레딧(Credit)'에 집중했다. 크레딧은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으로 각 제약사 반품 정책에 따라 크레딧 제공 기준을 정해 시행한다. 크레딧 금액은 최초 취득 원가, 현재 원가 또는 계약 원가 등을 기준으로 제약사가 직접 계산하거나 반품업체에 대신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연구팀은 "크레딧 메모(credit memo)라는 회계전표를 통해서 크레딧이 관리되며, 크레딧을 받은 도매상 및 소매상은 추후 거래 시에, 혹은 미지불액이 있을 경우에는 지불할 금액을 이것으로 상쇄할 수 있다"라며 "이렇게 반품업체들이 엄격한 규제 하에서 불용재고약과 회수 대상약을 안전하고 적절하게 처리한다. 이들은 주(state) 정부의 면허를 취득하고 마약품 반품 관리를 위해 마약단속국(DEA)에 등록이 되어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반품 전문 업체로는 지알엑스(GRx), 파마 로지스틱스(Pharma Logistics), 파마슈티컬 리턴즈 서비스(Pharmaceutical Returns Service)를 꼽을 수 있다.
지알엑스는 1986년 '의약품 반품의 골칫거리를 해결한다'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미국 전역의 약국, 병원 등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GRx는 이 분야의 표준이 되는 기업으로 꼽힌다. FDA, DEA, 교통부(DOT), 환경청(EPA), 주 약국위원회의 라이선스를 준수하며 1000개 이상 제약사와 도매상, 구매대행사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있다.
지알엑스는 반품과 관련한 크레딧 평가를 위해 재고 목록을 대신 작성하며, 제약사의 정책에 맞춰 반품을 진행하고 크레딧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회수 서비스는 초기 알림부터 회수 종료까지 데이터 통합, 회수 및 유효성 확인, 최종 처리, 전체 진행 과정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 작성 및 제출 등 프로세스의 모든 측면을 관리한다.
파마 로지스틱스는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1위 반품 전문 업체로서 병·의원과 개인 및 체인 약국, 국방부 등에 반품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간 추적 수익은 약 515억원이다. 파마 로지스틱스는 의약품의 예상 반품 가치를 빠르게 파악해 14일 이내에 크레딧을 신속히 제공하는 '신속 크레딧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파마슈티컬 리턴즈 서비스는 미국 약사회가 공인한 최초의 반품업체 중 한곳이다. 이 기업은 동물병원을 위주로 약물 폐기·처분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이곳은 규모가 작아 반품하기 곤란한 제품들을 모아 제약사의 최소 반품 정책을 충족하고 크레딧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미국은 비효율적이던 의약품 반품 물류를 제3자인 반품 전문 업체를 통해 안정화하고, 우리나라와 달리 엄격하고 책임의 주체가 명확한 반품 규정을 만들어 체계가 확고히 정착할 수 있었다"라며 "미국 역시 제약사별 반품 정책은 상이하지만 반품업체가 서로 다른 반품 정책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크레딧 정산, 그리고 반품과 관련한 배송 물류 등 모든 업무를 부담하여 복잡성을 해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대한약사회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세 단체가 미국의 선례를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미국 반품 업체가 초창기 비영리법인으로 출발했던 사례를 약업 3단체가 벤치마킹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라며 "의약품 반품 문제는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기보다 제3자의 개입으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정새임 기자 (same@dailypharm.com)